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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강단에 선 조훈현…"KAIST, 먼저 인간이 되라"
과학도들과 바둑 대가의 만남…50년 바둑 인생 강연


한국 바둑의 신화를 쓴 조훈현 국수가 방문한 것. 1962년 세계 최연소 나이인 9세에 프로바둑에 입단한 이후 82년 한국 최초 9단, 95년 1천 승 기록 달성, 96년 한국기네스협회 선정 최다연승 및 최다타이틀 획득, 천재 이창호의 스승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조훈현. 그가 KAIST를 찾아 자신의 50년 바둑 인생을 들려줬다.

조 국수는 바둑을 시작하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있었던 일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놨다.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부터 바둑을 다시 배웠던 과정, 선배와의 내기 바둑으로 억울하게 파문당했던 일, 군대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 있는 동안 70세 노령의 스승 세고에 켄샤쿠(瀨越憲作)가 자살해 겪었던 아픔 등. 파란만장했던 그의 일생에 참석자들은 때로는 웃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 국수는 만 4세 때부터 바둑알을 잡았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그를 위해 없는 살림에도 서울로, 일본으로 그를 데리고 영재교육을 시키기 위해 애를 쓰셨다고. 그 기대에 부응해 조 국수는 겨우 9살의 나이에 입단, 더 큰 곳에서 배우고자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일본에서 그는 세고에와 후지사와라는 일본 바둑계의 거두를 만나게 된다.

특히 그는 세고에로부터 바둑보다는 '정신'을 배웠다고 말했다. 조 국수는 "처음에 스승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묻자, 스승님은 '스승의 역할은 제자가 공부할 수 잇게끔 환경 만들어주고 나쁜 길로 가지 않게 막아주고 갈 길을 인도해주는 것'이라고 했다"며 "그때 들은 말이 나중에서야 이해가 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또한 이창호라는 거물을 키워낸 좋은 스승이기도 하다. 이어 조 국수는 "항상 스승님은 1인자가 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먼저 '인간이 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두 번째 스승인 후지사와는 정식 제자는 아니었지만, 일전에 조 국수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올 정도로 조 국수를 각별히 아꼈다.

"오시자 마자 바둑판 가져오라고 하신 뒤 이틀 동안 바둑만 뒀죠.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아직은 덜 썩었다. 안심하고 가겠다'였습니다."

후지사와는 세고에만큼이나 조 국수가 일본으로 돌아오길 바랐던 사람이다. 하지만 "가족들 때문에 일본으로 갈 수는 없었다"고 말한 조 국수는 "세계가 다르지만 훌륭한 두 분을 모셨다. 내가 스승복은 많았다"고 회고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군대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조 국수는 "군대로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스승님이 자살을 함으로써 많은 아픔을 겪긴 했지만, 오히려 치열하게 싸우는 법을 군대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KAIST 학생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단 그는 "고수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며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절대 자만하지 말고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전했다.

강연에 참석했던 유준혁 생명과학과 학생은 "생각보다 과학이나 수학에 관한 얘기는 없었지만, 얘기 자체로 충분히 많은 도움이 됐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조훈현 강연 섭외하기까지…교수가 직접 집 찾아가 '부탁'

사실 조훈현 국수가 바둑 이외의 일로 강단에 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바둑이 인생이 전부였고, 다른 일은 할 생각도 없었다는 그에게 사실 이번 강연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런 조 국수를 처음으로 강단에 서게 한 주인공은 김동수 수리과학과 교수. 학과장을 맡고 있는 그는 처음 수리과학과 세미나인 '수학적 사고로 세계를 보자(Face the World with mathematical mind)'를 기획했을 때부터 조 국수의 초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심지어 조 국수의 스케쥴에 맞추기 위해 1회와 불과 2주 간격으로 2회 세미나를 강행했을 정도.

그는 "대학 때 바둑을 배운 이후로 바둑과 조훈현 국수에 매료됐다"며 "바둑과 과학·수학은 자유롭고 창의로운 발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그를 초청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조훈현 국수가 바둑에서 획득한 좋은 성과를 수학계에서도 이룰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생, 교수 모두가 성공모델의 인생을 듣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 조 국수에게 의향을 묻고 허락을 받기까지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김 교수는 조 국수의 집에 직접 찾아갔다. 그는 바둑과 수학이 어째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명하며 성공모델로서 조 국수의 삶이 학생들에게 치열한 삶의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조 국수는 김 교수의 부탁을 수락했다.

물론, 이 일에는 숨은 조력자도 있었다. 김 교수의 오랜 친구인 티씨아이네트의 신정수 고문이 가교 역할을 했다.

신 고문과 조 국수의 인연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신 고문에게 조 국수가 중학생 아들의 과외를 부탁한 것. 신 고문은 "과외를 해주는 대신 바둑을 알려 달라"고 말했고 조 국수는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신 고문은 "사실 그 뒤로 10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친구의 부탁에 조 국수께 전화를 드렸다"며 "직접 둘이 찾아가 2시간 동안 정말 절박하게 얘기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절박했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이 날 강연은 대성황이었다. 수리과학과 행사였고 크게 광고 없이 일을 진행했지만, 290석의 KAIST 터만홀이 거의 찰 정도였다.

<대덕넷 천윤정 기자> kularz@hellodd.com  
2007년 05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