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덴마크 공과대학교(Technical University of Denmark, DTU)에서 제 교환학생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5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생소한 환경에서 지내는 만큼 몇 달간 정신없이 준비했지만, 정작 그 계기는 사소했습니다. KAIST 캠퍼스를 떠나, 제가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한동안 내려놓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교환학생 모집 공고를 발견한 뒤 하루도 고민하지 않고 지원을 결심했으니까요. DTU에 지원한 이유도 파견 학교 목록 중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이 DTU인 듯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별다른 계획 없이 결심한 교환학생 생활이었지만, 한 학기 동안 새로운 환경에서 지낸 것은 제게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먼저, 평소에 익숙했던 KAIST의 문화나 제도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DTU에서 교환학생으로서 수업을 들은 후, 저는 여태껏 제게 익숙했던 수업 방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제가 DTU에서 들은 수학 전공 수업은 그래프이론, 실해석학, 암호학으로 총 3과목이었습니다. 서로 다소 달라 보이는 과목이지만, 수업 방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직후 긴 토론 시간을 마련해, 그동안 수강생들이 그날 들은 수업과 관련 문제에 대해 대화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KAIST에도 연습반이라는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 퀴즈나 보충 수업을 목적으로 운영되며, 토론을 할 자리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러한 KAIST의 분위기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처음엔 DTU의 토론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수업 방식이 내용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수강생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기에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제게 익숙했던 KAIST의 제도도 DTU의 방식처럼 변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생긴다는 점 역시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DTU에 한국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기숙사에서 마주치는 사람,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 여행 중에 만난 사람은 대부분 확연히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각자 학교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전공에 관한 이야기, 덴마크에서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역으로 제 이야기를 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저와 제가 속했던 환경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결과적으로 제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KAIST에서와는 다른 생활을 하면서 일상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파견된다는 것은 KAIST를 떠나 평소에 익숙했던 환경과 잠시 멀어지며 그 대신 파견 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을 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처음부터 다시 쌓을 기회를 얻습니다. 즉, 어떤 단체에서 활동할지, 어떤 것을 공부할지, 한가한 때에는 무엇을 할지를 새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그리던 생활이 있었다면 이때 체험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종종 묻곤 합니다. “KAIST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그에 대한 제 대답은 보통 정해져 있습니다. “KAIST는 학부생에게 아주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제가 운이 좋은 경우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저는 KAIST가 많은 혜택을 제공하며 그중 제가 누린 혜택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환학생 파견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학기 동안, 혹은 방학 동안 교환학생으로서 생활할 여력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도이니, 수리과학과 학우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