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첫번째 숙제때 미적 2, 고급미적 E~H,
두번째 숙제때 미적 1, 고급미적 A~D반을 채점했던
조교 안병희(수학 박2)라고 합니다.
이제 성적 정정도 끝났으니 진짜로 한 학기가 마무리 된 셈이지요..
한 학기동안 조교로써 부족한 점도 많았고, 또한 시스템상의 불합리한 점들도 많이 느끼셨으리라 생각하며, 먼저 사과드립니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예제나 참고 자료보다 숙제가 너무 어려웠다던지,
게시판에 질문을 해도 빨리 대답이 올라오지 않았던 점이나,
자꾸만 뻗어버리는 서버와, 채점에 대한 불만들..
모두 인정하고 다시한번 사과드리며, 다음학기에는 좀더 나아질 수 있도록 건의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숙제 채점에 관련한 일입니다.
저는 이번이 메이플 조교는 처음인데요..그 전부터 카피가 많다 많다 소리는 들었지만, 막상 조교를 하고 보니,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몇 십명, 아니 백명에 가까운 숫자를 잡았으니까요..
사실 한 명 채점할 때마다 몇 백명의 학생들과 대조해 볼 수도 없고, 몇 문제씩 짜깁기한 것들은 찾기도 어렵고, 아무래도 인간적인 기억에만 의존하다보니 놓친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어디선가 "째수~"를 외치며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뭏든 이런 사람들 (제가 찾아내지 못한)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그러면 제가 생각한 카피의 기준을 말씀드리지요. 많은 분들이 본인은 억울하다 하시니 제 기준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말 그대로 카피인 경우, 식, 설명 등이 완전히 같은 경우는 당연히 0점 처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설명이나 식에 약간의 수정만 가한것이다라고 판단될 경우도 0점 처리하였습니다.
여기서 약간의 수정이란, 변수명이나 파라미터를 살짝 바꾼다던지, 설명을 조금 보충/삭제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같은 카피가 두문제 이상일어났을 경우에 0점처리하였구요, 한문제(두번째 숙제는 한문제 반)까지는 부분점수를 인정하였습니다.
불만을 가지시는 부분이 바로 여기더군요.
같이 하다보니 당연히 비슷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는 것과,
내가 다 이해하고 카피한 것이다 는 경우.
뭐.. 어느 숙제나 다 그렇겠습니다마는, 학생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어떤 문제에 대해서, 다른 두 사람이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설사 완전히 같다고 하더라도, 그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이 표현하기는 더더욱 어렵겠지요..
즉, 사용하는 명령어는 같다고 하더라도, 변수명도 다를 수 있고, 범위도 다를 수 있고, 어떤 명령어를 먼저 실행 할 것인지도 다를 수 있고, 중간중간 답을 출력해 보는 방법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것이 거의일치한다면, 카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아이디어는 공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명령어를 같이 사용할 수도 있겠지요. 알고리즘도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렬하는 방법이나, 하다못해 스페이스 까지 같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저희는 채점할 때 이 두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점장이도 아니고 말이지요. 다만 두개의 숙제를 놓고 볼 때 이것은 단지 어떤 하나를 다른 하나가 편집한 것에 불과하다 라는 판단이 들면 카피처리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빼먹고 놓친것이 있을 수는 있으나, 적발한 것에 대해서는 이러한 나름의 신념과 기준을 가지고 채점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만약 그렇지 못했던 부분이 발견되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이 기준에 맞춰 채점해 드릴것입니다.
한가지 더 말씀 드리면, 구제에 관한 것입니다. 카피라고 판단하여 0점처리 하였는데 원본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찾아옵니다. 당연히 저희로서는 누가 원본인지 판단할 길이 없습니다.
카피한 사람은 억울하다고 찾아오지 않겠지..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있습니다. 인정할 수 없다고 이의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저희는 이 원본이 다른 사람에게 유출할 의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만약 유출할 의사가 있었으면, 당연히 그것도 0점 처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미 홈페이지에도 여러번 공지가 되었던 사항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만약 본인이 정말 원본이고 유출할 의사가 없었다면 그것을 증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증명하는 방법으로는 카피가 적발된 모든 사람이 원본 모르게 파일의 훔쳐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카피를 한 학생중에 조금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이 많더군요. 카피해서 걸리면 그냥 0점 받으면 되지 뭐.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본인이 제출한 숙제가 없으니, 0점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카피라는 잘못을 했으니 그것에 대한 적절한 처벌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저는 그 처벌의 방법으로 직접 자기 입으로 원본을 훔쳐냈음을 인정하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다음학기에는 어떤 방법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카피를 해서 적발이 되었을 때, "아이 재수없이 걸렸네"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적발이 되면 처벌이 뒤 따른 다는 것을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못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팽배해 질때, 수십억씩 받아 쳐먹고도 당당히 돌아다니는 놈들이 생기고, 힘없는 여학생을 강간하고도 덮어두기만 하는 그런 썩은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카피한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작금의 수능 부정 관련뉴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재수없게 걸렸구나. 안걸리게 잘하지" 이런 생각했나요? 아니면 "저런 나쁜 부모/학원선생/학생 들을 봤나.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라고 생각했나요.
마찬가지 입니다. 대학에서의 컨닝이나 카피가 마치 한 번쯤은 해봐야 할것같은 그런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그것을 배우지 못하셨다면, 이제 배우십시오.
나라를 움직일 잠재된 힘은 현재의 정치인이나 기성 세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은 바로 젊은이, 학생에게 있으며, 이 학생들에게서조차도 원칙이 존중받지 못하고, 부정이 힘을 발휘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수가 많던 적던, 그런 일들에 대해 처벌받지 않았음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카이스트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에 무척 부끄럽고, 대다수 선의의 피해자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모두들 2004년 잘 마무리하시고, 즐거운 연말 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또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항상 행운의 양지에 서 계시기를 바라며 언제나 평화가 함꼐하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4년 12월 18일
메이플 조교 안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