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최윤경 (전 수리과학과 행정팀장)

최윤경 (전 수리과학과 행정팀장)

[약력] 한국과학원(KAIST 대학원의 전신)에 1980년 4월 입사 후 38년 동안 KAIST에서 근무/ 재직 중 27년을 35년 역사의 수리과학과(한국과학원 응용수학과 시절 포함)에서 근무/  KAIST 수리과학과 행정팀장으로 근무 중 2018년 6월 명예퇴직.

(기=권민성 학생기자, 선=최윤경 선생님)

최윤경(전 수리과학과 행정팀장)

기: 안녕하십니까, 학사과정 14학번의 학생기자 권민성입니다. 선생님을 인터뷰를 하게 되어 뜻깊습니다.

: 반갑습니다.

기: 학과 창립 이래 최초로 학과에 근무하신 학과 역사의 산 증인이시라 들었습니다. 교수님들은 최 선생님을 명예동문이라 생각 하신다는데, 첫 근무가 1980년이시니 KAIST 사번 순서가 학과 명예교수님들보다도 빠르실 것 같습니다.

선: 네, 맞습니다. 페이롤(payroll) 넘버가 200번대로 빠른 편이죠.

기: 최근 암 수술 후 회복중 이신데 요즘 건강은 좀 괜찮으신지요?

선: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많이 움직이면 다음 날 휴식을 취해야 하긴 한데, 체력을 키우려고 헬스장을 갑니다. 일상생활에 문제는 없습니다.

기: 예를 들어, 이창옥 교수님이 KAST 석사과정 학생이시던 때도 있고, 국내의 서울대, 포스텍, 연세대, 고려대 등 여러 명문대의 교수님들 중에도 KAIST의 학생이었던 분들, 혹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졸업생들도 계시는데요, 학생이었던 분들이 훗날 다시 만나 보실 때는 어떤 기분이신지요?  

선: 굉장한 사람들과 같이 일했구나 싶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나에게 큰 복이었다고 느낍니다. 졸업생들이 다양한 곳에서 널리 활동하는 것을 보며 그 능력이 적재적소에 쓰이고 있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 입사 당시는 학교의 분위기, 그리고 어떤 계기로 수학과에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선: 처음에는 학생과에 소속되어 일하던 중, 기계공학과 김문언 교수님을 학과장으로 새로 응용수학과가 생기며 학과 행정 업무를 맡을 직원을 모집했습니다. 마침 당시 동창회장께서도 응용수학과 근무는 어떤지 추천을 해 주셨죠. 새 업무라 배울 것이 많았지만, 과정이 재밌기도 했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것이든 시작을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기: 명예퇴직을 하신 후 어떻게 생활을 하고 계신지요? 또 퇴직선배로써 교수님들께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선: 우선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 년에 두 세 번 쯤 국외여행을 가 보려 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인문학 등 관심 분야도 공부해 보고 싶어요. 퇴직 전에는 잘 몰랐는데, 대전에 평생교육원 등이 많더군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활동의 폭이 좁아지니까요. 경제적 대비도 중요합니다. 취미를 만드는 것도요. 취미를 함께할 친구도 중요하고, 나이 때문에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기: 긴 직장생활 중 선생님께서 가장 기쁘셨던 일들이나 추억, 또 가장 슬프셨던 일, 화나거나 아쉬웠던 일 등이 있으신지요? 

선: 예전에 2000년쯤에 응용수학전공과 수학전공으로 학과가 분리된 적이 있었습니다. 교수님들도 힘들어 하셨고, 함께 일하던 저도 힘들었지요. 직장 생활의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의 각종 수상이나, 학과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 기쁘기도 했고, 또 신임 교원 연구실이나, 화장실, 강의실을 리모델링 한 후 깨끗해진 새 공간을 보고 뿌듯하였지요. 최석정 강의실도 마무리를 맡고 싶었는데, 그전에 퇴직해서 아쉬움은 남습니다. 직장 생활 마지막은 시작을 함께 한 수리과학과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소망은 이루어져서 기쁩니다.

기: 직장 생활 중 이랬더라면 싶은, 현직에 계실 때는 말씀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말씀해 주시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선: KAIST의 교수진이나 학생들 수준은 세계 탑이고, 이런 분들과 일하는 것은 자랑스러우나, 한편으로는 직원들도 그에 맞는 역량을 갖출 수 있게 제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직원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이와 더불어, 예컨대 ‘탄력근무제’ 등의 제도가 도입되면 많은 직원들이 학위과정에 등록해 전문지식을 강화하고, 행정 발전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학과에 오래 있었지만 타 행정부서들도 상당기간 일하며 느낀바가 있습니다. 학과는 대개 행정부서의 조치나 요청을 이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조직 간 인사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종종 행정부서의 학사, 교무 정책들이 현장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때가 있습니다. 행정 효율운영을 위해 직원의 학과-행정부서 순환근무 제도가 필요합니다. 종종 신입직원들이 입사 직 후 행정부서에서 학과업무 이해 부족으로 마찰도 생기곤 합니다. 직원들도 행정부서-학과 편가르기 식 인식을 벗어나야 합니다. KAIST는 교육기관이므로 학과에서 학사 행정을 익히는 것은 전체 업무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학은, 회사 조직과는 달리 교수, 학생, 직원의 세 구성원의 상호협력으로 지탱되고, 각 구성원 역할분담이 분명해 협업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조직이 작을 때는 서로 이해도가 높았지만, 오늘날처럼 규모가 커진 후에는 구성원 간 소통 부재를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소통과 이해, 존중을 장려하고, 부서, 학과별로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조성했으면 합니다. 

기: 학과 발전기금을 5천만 원 이상 기부하여 받는 플래티넘의 칭호는 현재까지 선생님 단 한분이십니다. 무려 7600만원 약정에 이를 상당히 채우셨다고 하는데요, 이런 큰 기부를 하시게 된 계기와 그 동기 등을 듣고 싶습니다. 

선: 어릴 때부터 기부 봉사를 많이 생각해서 유네스코에도 몇 십 년간 기부해 왔어요. 수리과학과는 제가 오래 몸담고 애착이 생긴 곳이라, 떠나기 전 제 흔적을 남기고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페이롤 넘버가 제일 낮으니 이름은 좀 올려주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웃음) 기금의 취지는 두 곳으로 나누어진 학과를 다시 같은 장소로 모을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곳이고, 재미있게 일하면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랑도 받았으니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은퇴하면서 남은 돈을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지요.

기: 학과 사무실을 업무 차 찾는 교수님들, 학생들과 나누었으면 하는 의견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선: 학생 분들께 학기 초 행정 절차를 알려드려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게 되기도 하고, 때때로 규정이 바뀌어 메뉴얼이 무색해지는 일도 많죠. 결국 학생이나 연구실이 담당 직원과  1:1로 소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비 관련 업무, 학생 졸업 관련 업무 등이 특히 그렇습니다. 중요한 공지는 전체 메일로 알려드리지만 세부 규정은 종종 바뀌니, 학생, 교수, 직원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을 처리해나가는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기: 과거에는 독신 여성이 KAIST에 근무하시는 것이 흔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성 차별 문제 등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문제들이 있었고, 어떻게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등 의견을 여성들을 위해서 해 주십시오. 

선: 독신을 고집하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미혼으로 남게 되었네요. 강요하지 않는 부모님도 계셨고, 외로움을 덜 타기도 했고, 학과의 자유로운 분위기도요. 많은 학과 교수님들이 외국에서 학위를 받으셔서, 사회분위기보다 진보적인 시각으로 여성을 대하시기도 하셨고요. 대학이라는 울타리가 독신 여성들의 근무에 더 나았던듯 합니다.

   과거 한국 사회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여전히 여성은 결혼, 임신으로 인한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독신이지만 주변 여성 동료들의 애로사항을 들으며 마음 아픈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여직원들은 대졸 임에도 남자 직원들과는 다른 직급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남직원은 행정원, 여직원은 사무원으로 직급이 분류되어, 여직원에겐 승진의 기회가 없었고, 임금 차별도 있었습니다. 2000년 초반부터 비로소 신입 채용 시 남녀 모두 행정원으로 채용되고, 몇 년 전에야 사무원, 행정원 직급이 통합되어 여직원에게 승진 기회가 열렸습니다. 업무에는 남녀 차별이 없는데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공정한 평가가 있지 못할 때도 있어 보입니다. 학교 직원 중 여직원의 비율 대비 여성 보직자 수가 낮은 것을 보면,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는 후배 여직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부장, 처장까지 승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기: 마지막으로, 인생의 선배로써 이제 갓 대학 생활을 시작한 10대 후반의 학생들부터 20대-30대의 대학원생에게,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이나 조언의 말씀 등을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선: 남들이 저를 평가할 때 “이 친구는 지나치게 긍정적이야”라고 농담처럼 얘기하는데, 저는 이것이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은 삶의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시면 아버지가 바보스럽게 보일 정도로 현실을 긍정적으로 아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저는 삶을 대할 때 어느 정도 이런 태도가 있었으면 해요. 저 역시 부모님과 남동생이 일찍 돌아가시고 또 제가 큰 병들을 앓는 등 인생의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이 순간 세상에 남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시대를 만들어 간다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이 ‘긍정의 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넘어지는 시련 가운데 희망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일어서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들에게서 이런 끈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과 즐기면서 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 공부도 일도 즐기면서 하고,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식과 이성뿐만 아니라 인성과 감성, 지혜를 갖춘 전인(全人)이 되었으면 해요. 열심히 해서 자기분야에서 성공한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고 나설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일도 중요합니다. 아무튼 우리 수리과학과 학생분들 모두 사랑하고 힘내세요!

기: 귀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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