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다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손에 잡히는 일을 해오면서 돌아보니 학부 재학 중 2번의 동아리 회장, 휴학, 2개 학교 교환학생, 방송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여러 활동을 통해서 제가 수학도라는 사실이 어떻게 이 활동들에 녹아들 수 있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또한, 수리과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후배, 동기분들에게 평소 생각하던 작은 바람을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는 연예인 6인과 매회마다 다른 게스트가 모여 기업 입사 문제, 창의력 문제 등 다양한 방향의 생각이 필요한 문제를 푸는 퀴즈쇼 형태의 방송입니다. 평소에도 즐겨 보고 특히 독일 교환학생 시절 많이 보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침 작년 3월에 KAIST 특집 촬영을 위해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아서 지원했습니다.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6인에 선발되어, 방송 출연 기회를 얻었습니다.
대기실에서 녹화를 기다리며 PD,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았습니다. 많은 지원자 중에 선발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저의 질문에 PD님은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수학을 정말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해주었습니다. PD님의 자연스러운 대답은 저에게 뿌듯함과 함께 의문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실력은 물론 수학에 대한 열정도 뛰어난 학우들이 넘쳐나는 수리과학과에서 제가 두드러질 만한 것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이내 제가 수학에 관해 남에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잘 발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굳이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저마다의 낭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집합론과 논리학의 단단함, 해석학의 엄밀함, 2014년 가을 해석학 2 수강을 마치며 집합의 개폐성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당연히 없을 거로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두 달 후 위상수학이 안겨준 놀라움, ‘이런 방법으로도 증명이란 걸 할 수 있다니!’라는 충격을 준 확률론 수업에서의 스톤-바이어슈트라스 정리의 확률론적 증명, 끝없는 일반화, 한계 극복, 확장이라는 수학의 숙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해석학 시간의 density argument 등 수학에 숨어 있는 그 매력을 대하는 건 수학자의 특권이지만, 그것에 대한 열정은 누구의 앞에서나 빛납니다.
제가 실력과 열정이 모두 쟁쟁한 친구들 사이에서 눈에 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수학도가 아닌 사람 앞에서도 담담하고도 살아있는 눈빛으로 난해하지 않게 수학의 낭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학을 통해 만난 사람들, 방송 출연이라는 재밌는 경험, 직간접적으로 저에게 온 수많은 기회는 모두 이 자세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태도로 살면서 사람들은 수학도를 신기하게 보긴 할지라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 오히려 이러한 낭만에 관해 얘기할 때 집중해주고, 무관해 보이는 분야의 사람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도 알았습니다. 발표 능력이나 전달 능력에 대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수학도 분들이 가진 각자의 낭만을 자조적으로 낮추지 말고, 은은하게, 때로는 대놓고 (너무 어렵지는 않게) 드러내기만 하면 됩니다. 수리과학과의 학우들은 자연과학동 테두리만 벗어나도 그 공간에서 ‘가장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수학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멋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