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한화정보통신 소프트웨어 연구소/ 미르넷 사업개발팀, 전략기획팀, 경영기획팀
(학생기자=기, 동문=동)
기: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KAIST 수리과학과 학사과정 14학번의 학생기자 권민성입니다. 어려운 기회를 마련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졸업을 하신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시는데, 학교에 한번 돌아오실 기회가 있으셨는지요.
동: 동아리 홈 커밍 데이 (Home Coming Day)에 몇 번 방문했습니다. 재학 시절 소리모음이라는 풍물 동아리 활동을 했었습니다.
기: 졸업 후에 한화정보통신으로 취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동: 첫 직장인 한화정보통신에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연구소에 근무했습니다. 이후 회사가 미르넷에 인수 합병 되었지요. 미르넷이 태양전지 사업을 시작하면서, 미르넷에서 새로 만든 법인으로 옮겼지요. 새 법인은 태양전지 공장을 짓고 태양광모듈 회사에 제품을 판매하였지요. 주로 사업계획서를 쓰고 국내외의 투자자를 만나 투자 프레젠테이션을 한국어나 영어로 하는 등, 경영기획 쪽 업무를 맡았죠. 태양전지 사업이 잘 될 때는 한 달 회사 수익이 150억원이나 될 때도 있었는데, 이후 시장 사정으로 수익이 50억원 정도로 떨어지는 등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로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결국 회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죠. 스트레스가 어쩌면 병의 악화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병원 입원 후 퇴원을 하면 괜찮다고 느껴 다시 출근 했는데, 장애를 얻을 줄은 몰랐었습니다.
기: 현재는 사회적 스타트업인 자락당 마켓인유에서 사업기획&운영팀 실장을 맡고 계시는데요, 어떤 회사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동: 고객들로부터 중고 제품을 매입하고 그것을 재판매하여, 고객도 적절한 이익으로 중고를 처분하고, 자원 재순환을 하며, 저희는 판매로 수익을 내는 회사입니다. 김성경 대표님의 철학에서 비롯된 사업입니다. 대표님은 ‘세상 모든 것은 중고가 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십니다.
원래는 온라인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운영했는데, 중고를 취급하다 보니 재고가 채워지는 속도가 수요보다 느려서, 현재는 오프라인만 운영합니다.
기: 선배님께서 회사에서 담당하시는 업무는 어떤 일이신지요? 그리고,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은 들지만, 업무가 학부 시절 수학을 전공하셨던 것과 연관성이 있는 편인지도 궁금합니다.
동: 보통은 경영기획 같은 팀의 업무로,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량을 기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자락당은 중고 제품을 다루니 재고가 소수, 때로는 한 두 개 밖에 없는 경우가 있어, 신제품을 공장 납품받는 일반적인 쇼핑몰 재고관리 소프트웨어를 쓰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출 데이터보다 재고관리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인식 되었습니다. 이를 이전 회사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량이 늘어나지 않는 선에서 개선했습니다. 한 때는 재고가 포스트잇으로 관리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엑셀과 개선된 시스템으로 물품 취급 과정 데이터가 누적관리 되도록 체계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이를 위해 회사 여러 직원이 파일을 공유 및 동시 편집해야 하는 일이 잦은데, 제가 자락당에 입사할 즈음에는 인터넷 공유 서비스인 드롭박스(Dropbox)나 구글(Google) 등이 제공하는 실시간 인터넷 파일 공유 서비스가 보편화 되어, 직원들이 재택 근무로 업무를 처리하여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제 경우도 약 일주일에 1회 정도는 출근 근무를 하고, 나머지는 재택 근무를 통해 일을 하지요.
업무가 학부 시절에 수리과학과에서 배웠던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만 논리력이나 사고력 등이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듯 합니다. 데이터를 관리할 때, 회사 상황에 맞춰서 원하는 정보를 추려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죠.
기: 뜻하지 않은 장애를 입게 되신 것이 2013년 경이라고 들었습니다.
동: 처음 척수염이 발병한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그 때는 무슨 병인지도 몰랐고, 상태가 악화되어도 병원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낫는 듯하여, 치료를 위해서 회사를 오래 쉬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회사 경영상황으로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때때로 몸이 약해지면 재발하기도 했었지만, 치료를 병행하면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그 와중에 결혼하고, 아이 출산 후에는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니 너무 바빠져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아니겠지’, ‘곧 괜찮아 지겠지’하는 마음으로 병원 치료를 늦출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척수 염증이 악화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치료를 받으면 회복했으니 당시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아직도 회복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장애에서 언젠가는 회복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장애를 입고 나서 달라진 점은 있습니다. 시설이 불비하면 생활이 불편함을 깨닫게 된 점이죠. 그래서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입기 전에는 승강기 없는 3층 집에서 살았습니다. 장애를 입고 나니, 누가 저를 업고 나와야만 외출을 할 수 있었죠. 불편하기도 했고, 특히 아이의 육아에도 힘들었습니다. 그 때 살던 집은 화장실이나 방의 턱이 높아, 나무판자로 턱에 경사를 만들어 휠체어로 넘을 수 있었죠. 지금은 이사를 해서 상대적으로 나은 집에서 살고 있어요. 승강기도 있고, 문턱도 낮아 생활하기가 수월해 졌어요.
기: 최근 장애가 있는 학우가 저희 학과로 진입하면서, 학과에서는 그 학우에게 최대한 배려를 하기 위해 화장실 개선 공사를 비롯하여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위해 무엇이 개선되면 좋겠다고 생각 하시는지요.
동: 가끔씩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로 만들어져 있음에도, 세면대 수도의 모션 센서가 잘못 설치되어 휠체어에 앉은 사람 팔을 인지하지 못해 세면대 물을 틀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센서를 서있는 사람 기준으로 설치해서입니다. 장애인 화장실 점등 센서도 같은 이유로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면 불이 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위해 경사 입구를 만든 건물들이 많아졌지만,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해 경사로 끝에 추가로 턱을 만들어 이 때문에 휠체어로 올라가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건물 입구 턱들도 종종 너무 높아 들어갈 수 없어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인터뷰 장소도 낮은 턱이 있는데, 턱이 경사로 앞에 있어 잘못하면 쏠려서 넘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휠체어가 크면 상대적으로 낫지만, 일상생활에서 큰 휠체어를 사용하면 활동이 힘들어 작은 휠체어를 쓰기 때문에, 이 경우 불편합니다.
기: 선배님께서 장애를 입으신 후 사람들의 어떤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라시는지 등을 말씀해 주십시오.
동: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크게 신경을 써 보지는 않았습니다. 회사 사람들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척수장애인협회에서 회사 동료들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장애인과 같이 일하면 불편함이 없냐는 질문을 하시는데, 동료들이 아무렇지 않다고 하셔서 협회 분들이 놀라셨습니다. 가족들이나 회사에서나 “사람이 몇인데 불편한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여행이나 회식도 같이 다니는 등 자연스럽게 대해 주시더군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척수장애인협회의 사무총장님의 말씀을 들려 드리지요. 회사가 문 닫고, 저는 장애를 입고 치료에 전념할 때, 협회 추천으로 사회의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에 지원하려고 교육을 수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장애인이라고 주눅 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불편한 점을 개선해 달라고 말해서 개선이 되면, 장애인 뿐 아니라 유모차를 이용하는 분들이나 노인 등,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밖에 자주 나오고, 불편함을 경험해 보시고, 그 불편함을 자주 말해서 개선될 수 있게 합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물론, 노력할 것들이 있지요. 한 친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기업이 장애인 채용 할당을 채우기 위해 장애인을 우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가끔 장애가 심하지 않은 분들만 채용하려는 경우가 있다더군요. 예를 들어 면접 중 잠깐 휠체어에서 일어서 보라고 하는 식으로요. 제가 근무하는 자락당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죠. 저를 채용하고 나서 불편한 점은 최대한 맞추어주고 개선해 주시고 있으니까요.
기: 입원 중 척수협회의 ‘일상홈’ 프로그램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말을 선배님의 어느 언론 인터뷰 기사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일상홈에 참여하실 때의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동: 일상홈은 제게 장애인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귀중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상홈의 프로그램의 코치는 역시 저와 같이 휠체어를 탄 사람이었지만,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스스로 운전해서 출근하시고, 꾸준히 운동도 하시더군요. 옷도 잘 입고 다니시고요. 휠체어를 타기만 했을 뿐 장애가 없건 있건 무엇이건 똑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희망을 주셨습니다.
2015년, 취업 후 회사 일을 배워야 했는데, 제가 아무래도 몸이 편치 않다 보니, 자락당 대표님께서 매우 감사하게도 일주일에 한 번 집으로 직원을 파견해서 업무 교육도 제공해 주셨어요.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해주시니 저도 회사에 잘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동: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께 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한 번 더 들려드리고 싶네요. “자주 밖으로 나가고 자주 표현하라”라고. 그렇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도 모릅니다. 그 분들은 직접 겪지는 못 했으니까요. 불편한 것은 개선을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주변 환경이 바뀌면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기: 귀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