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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소통의 과학

대학 초년생 시절 내가 존경하던 어느 선배가 “수학은 가장 아름다운 과학적 예술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갓 스물 된 나에게 그 말이 어찌나 멋있게 들렸던지, 지금도 그 대화를 나누었던 장소와 선배의 반짝이던 눈빛이 눈에 선하다.

대기업들에서 일하던 나는 회사의 CEO와 경영진을 설득하여 새로운 분야의 일에 펀딩을 받거나 신설 부서를 만드는데 동의를 얻어야 할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까지 가장 중요한 기술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전문성 있는 대단한 내용과 디테일 보다는 상대방이 나의 설명을 듣고 1분 이내에 “아하!” 하고 무릎을 치며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쉬운 일처럼 들리지만, 나와 비슷한 레벨의 전문 지식이나 관심이 전혀 없는 상대방을 짧은 시간 안에 공감하게 하고 의사결정하게 하는 것은 무수한 연습과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는 예술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모시던 CEO 한 분은 나를 포함한 모든 경영진에게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나를 설득하려면 다섯 살 짜리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라.” 직원들이 몇 달간 준비한 수십 쪽의 훌륭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하루 종일 수십명의 보고를 받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CEO에게 그 자료를 다 보여 주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자료 문서의 겉 표지만 띄워 놓고 말로만 1분정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래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바로 “소통의 과학”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고난이도의 엄청난 내용일지라도 상대방이 1분 안에 이해 할 수 있게 하는 능력.

나의 경험상, 수학 등의 기초과학을 전공한 머리 좋은 인재들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왜 그럴까? 나는 그들이 “소통의 과학”을 가벼이 여기고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 상대방에게 동기부여 할 수 있는 키워드 찾기, 상대방이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협상의 기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국제사회에서 “소통의 과학”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지난 5년간 영국에 본사를 둔 GSMA (세계통신협회)에서 근무하며 나는 세계 각국의 통신사 CEO들 및 정부관계자들과 가깝게 일하며 그들을 설득하고 통신산업의 미래를 위한 어려운 일들을 행동에 옮기게 하는 역할을 해왔다. 다행히 머리 좋고 능력이 출중한 직원들이 나를 서포트해 주어서 세계적 트렌드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 그에 기반한 공동 전략을 수립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어려운 일은 전혀 다른 문화와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Aha! Moment” 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 회사, 사람, 국가 등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고, 내가 가진 컨텐츠를 그 사람의 눈높이에서 최대한 쉽고 임팩트 있게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통신 산업뿐 아니라 금융, 의료, 교육, 제조, 유통 등등 전 산업분야에 걸친 대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모든 산업군에서 고도의 수리능력을 갖춘 수학자들이 핵심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마 인류 역사상 수학이 현실 세계에 가장 중요해 지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출중한 두뇌를 가진 수학자들이 정말 의미 있는 역할을 하려면 수학 자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경제와 문화를 이해하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트렌드를 가늠해 보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결과 수학을 어떤 곳에 어떤 모양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찾아보고 준비해야 한다.

사실 현실세계에서 쓰이는 인공지능이나 딥러닝 같은 기능에 필요한 수학은 대부분 매우 기초적인 수준의 수학이다. 진정한 Breakthrough는 이런 기초적 수준의 수학을 창의적으로 어떤 분야에 적용하여 가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가에서 승패가 갈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도전하고 성취할 지라도 정작 “소통의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노력의 결과는 현실 세계에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우리 교육 시스템이 제공해 주지 못하던 것들,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이다. 수학도들 스스로도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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