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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이야기

20여 년 전 에피소드이지만 세계 정상급 시절의 조훈현 국수에게 바둑을 배운 적이 있었다. 수학 전공자로서 금전적 사례 대신 중학생 장남의 수학을 지도해드린다는 재미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IT벤처를 경영하며 해외 출장도 잦았던 입장이어서 이 거래는 오래지않아 송구스럽게도 이쪽에서 먼저 파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분 자택에서 석 점으로 여러 판을 배우면서 들었던 값진 교훈들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또한 이 짧은 사제 간 인연으로 10년 전에는 그 분을 카이스트 강연자로 초빙하는 섭외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바둑을 배울 당시 조훈현 국수의 가르침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모든 수순을 다 읽어보겠다는 식의 장고 바둑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훈련을 통해 속기 감각을 키워야 한다. 나도 그 다음 최선의 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악수들은 한 눈에 보인다. 고수가 된다는 것은 그런 악수들을 배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고 나면 수를 깊이 읽으며 검토할 대상이 몇 군데 남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바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을 오래 살아가면서 삶의 지혜를 자꾸 쌓아간다고는 하지만 어떤 삶의 선택이 최선인지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다양한 삶의 체험이나 폭넓은 독서를 통해 내공이 쌓여 가면 피해야 할 악수들은 분간이 잘 되는 법이다.

그런데 한참 뒤 인공지능 기술을 바둑에 접목시킨 알파고 등장과 더불어 이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인공지능바둑이 등장한 것은 사실 오래 전이다. 그 이후 바둑 정석 입력은 물론 고수들의 판단 규칙들을 적용시켜나가면서 조금씩 강해져갔다. 결국 아마2-3단 실력에 이르렀는데 그래도 막상 대국을 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수들이 나타나곤 하여 실망이 컸다. 하지만 2년 전 아마 5-6단 실력에 이르렀다는 일본판 ‘젠5’과의 대국에서는 첫 판에 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인공지능의 몬테카를로 기법을 적용한 것인데 모든 수를 철저히 다 읽는 것이 아니라 랜덤하게 일정 수들을 선별하는 식으로 많은 수를 진행시킨 후 승패 판단을 하는 방식이다. 그리하여 각 점의 착수 효과를 확률적으로 계산한다.

최근 세계 최정상 프로들에게 비공식적으로 60연승을 거둔 바 있는 구글의 알파고는 어떤가? 딥러닝 기술을 이용하여 기계 학습까지 하는데 기보 학습의 양에 따라 실력이 더욱 증대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조훈현 국수의 이야기처럼 어떤 수들이 배제할 악수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 능력을 이용하면 몬테카를로 방법에서의 랜덤 방식보다는 검토할 수들의 선별력과 더불어 수읽기의 정교성이 더욱 향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딥러닝이라는 인공지능 기술로 인간의 다계층 신경망이 만들어내는 직관 능력까지 배운 셈이다. 오랜 역사의 바둑이라는 동양 게임이 이 첨단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더불어 응창기배에서 세계를 제패했던 조훈현 국수가 카이스트의 젊은 인재들 앞에서 들려준 이야기들도 감동적인 교훈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대성할 수 있었던 과정 스토리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풀어나갔다. 첫째는 가족의 관심과 소질에 따른 조기 교육, 둘째는 위대한 정신적, 기술적 스승과의 만남, 셋째는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던 집의 가난과 헝그리 정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결국 바둑이란 어느 정도의 자제를 요구하긴 하지만 계속 다양한 교훈을 던져주기도 하며 평생 동반자적 취미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는 변을 늘어놓은 셈이다. 그리고 악수는 조금 볼 줄 안다는 입장에서 바둑을 조금 둘 줄 아는 우리 집 아이에게는 이런 잔소리도 한다. “이 소중한 시기에 혹 온라인게임 같은 것을 가까이 한다면 이는 인생의 큰 악수가 된다. 그보다 수학 전공자로서 오랜 역사에 걸쳐 창조된 논리적 수학 구조물들을 탐험하고 어디에다 새로운 창의적 구조물을 보탤 것인가를 연구하는 게 더 나은 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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